
대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여윳돈이 생기면 바로 갚아야 할 것 같고, 주변에서도 “빚은 빨리 갚는 게 상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턱대고 갚았다가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출 조기상환에 숨어 있는 세 가지 함정, 지금부터 짚어보겠습니다.
함정 1. 중도상환수수료, 공짜로 갚는 게 아닙니다
대출을 약정 기간보다 일찍 갚으면 은행에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이름은 ‘중도상환수수료’이고, 대출받은 날로부터 3년 이내에 갚을 때 부과됩니다. 3년이 지나면 수수료가 사라지니까, 이 시점이 첫 번째 판단 기준입니다.
2025년 1월부터 금융위원회가 수수료율을 대폭 낮췄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준은 아닙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기준으로 고정금리는 평균 0.56%, 변동금리는 0.55%입니다.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대출 금액에 곱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주담대를 1년 만에 전액 상환한다고 해봅시다. 수수료율 0.56%에 잔여 기간 비율을 적용하면, 약 112만 원을 수수료로 내야 합니다. 2년 차에 갚으면 약 56만 원, 3년이 지나면 0원입니다. “빨리 갚아서 이자를 아끼겠다”는 계산이 수수료를 빼고 나면 생각만큼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조기상환으로 아끼는 이자가 중도상환수수료보다 큰지, 먼저 계산해야 합니다. 대출받은 지 3년이 안 됐다면, “지금 갚는 게 정말 이득인가?”를 반드시 따져보세요.
함정 2. 갚고 나서 현금이 바닥나면, 더 비싼 빚이 생깁니다
여윳돈이 생겼을 때 대출을 몰아서 갚는 분이 많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시원하지만, 문제는 그 뒤입니다. 비상자금 없이 대출만 갚아버리면,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이때 손이 가는 게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이나 현금서비스입니다. 2025년 말 기준 카드론 평균 금리는 약 13.9%입니다. 주담대 금리가 4%대인 걸 생각하면, 4% 빚을 갚겠다고 14% 빚을 새로 지는 셈입니다.
게다가 카드론은 신용점수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금융감독원도 소비자 유의사항을 통해 카드론·현금서비스의 과도한 이용이 신용점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신용점수가 떨어지면 나중에 다른 대출을 받을 때 금리가 더 올라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무설계의 기본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생활비 3~6개월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손대지 않는 비상자금으로 남겨둔다는 것입니다. 대출 상환은 이 비상자금을 확보한 뒤에 하는 게 순서입니다.
함정 3. 기회비용, 따져본 적 있나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담대 금리가 연 4%대라면, 같은 돈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었을 때 이자율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경우가 있습니다. 2026년 2월 현재,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연 2.9~3.1% 수준이라 주담대 금리보다 낮습니다. 이 경우에는 대출을 먼저 갚는 쪽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기회비용을 따져야 하는 진짜 상황은 따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출 금리가 3%대 초반인데, 곧 만기가 돌아오는 정기예금이 3.5%라면? 또는 연말정산에서 주택담보대출 이자 소득공제를 받고 있다면? 이런 경우 실질 금리는 표면 금리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서둘러 갚는 것이 반드시 최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대출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투자하겠다”는 논리는 위험합니다. 대출 이자는 확정된 비용이지만, 투자 수익은 확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회비용 논리가 성립하려면, 비교 대상이 예적금처럼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대출을 먼저 갚아야 할까?
“무조건 빨리”가 아니라 “전략적으로”가 핵심입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합니다.
서둘러 갚아야 하는 대출은 금리가 높은 것부터입니다. 카드론(평균 13~14%), 현금서비스(17~18%), 저축은행 신용대출 같은 고금리 대출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런 대출은 중도상환수수료도 없거나 매우 낮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대출은 금리가 낮고 기간이 긴 것입니다. 주담대처럼 연 3~4%대이고, 이미 3년이 지나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진 대출이 여기 해당합니다. 비상자금이 충분하고, 고금리 대출이 따로 없다면, 그때 여유 자금으로 추가 상환을 고려해도 늦지 않습니다.
결국 대출 상환의 핵심은 “빨리 갚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갚느냐”입니다. 금리가 높은 빚부터, 수수료가 없는 빚부터, 비상자금을 확보한 뒤에. 이 순서만 기억하면 같은 돈으로도 이자를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출처 (5개)
-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1월 13일(월) 신규 대출부터 중도상환수수료율이 인하됩니다」. 2025년 1월 9일.
- 한국은행. 「2025년 12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통계자료. 2026년 1월 27일 발표.
- 여신금융협회. 「장기카드대출(카드론) 신용점수별 평균금리 공시」. 2025년 12월 말 기준.
- 금융감독원. 「주요 민원사례로 알아보는 소비자 유의사항 — 대출상품 선택 및 신용관리」. 2023년 11월 3일.
-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정기예금 금리비교 공시」. 2026년 2월 기준.